전화가 걸려왔고,
그게 누구냐고 물었다.
연락되지 않는 전화번호..
누구인지조차 알지 못하는 번호를 담고 있는 핸드폰.
그게 너무 화가 나고 안타깝고 속이 상했다.
만약 내가 죽는다면,
내 동생도 내 핸드폰을 열어 저장된 번호로 문자를 보낼꺼다.
우리언니가 죽었어요.. 마지막인사 하러 와주세요.. 라고..
그 중 단 한명이라도.. 누구요? 라고 반문을 하지는 않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적어도 내가 죽었다는 소리를 듣고 아주 잠깐이라도 멈칫하며
그 아이가 죽었어..? 라는 생각을 해줬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핸드폰에 저장된 이름들을 보며, 그들에게 나는 어떤 존재일까 라는 생각을 해본다.
적어도 고개를 설레설레 저을만큼 싫은 존재는 아니기를 바라는데..
늘 사고치고 늘 미움받고 늘 바보같아서..
늘 마음이 무겁다.
나중에 나 죽었을때 몇명이라도 진심으로 안타까워해줬으면 좋겠는데...
시간이 흐른다는건 잊기위한 혹은 잊혀지기위한 과정이라고 생각했는데..
시간이 갈수록.. 점점 또렷해지는 네 기억이 자꾸 날 울게 한다..
몇년간 한번도 바뀌지 않았던 네 핸드폰으로 전화를 걸면 언제나처럼 내 이름을 불러줄 듯하다...
첫날엔 네게 잘못한 일들이 생각나서..
둘쨋날엔 네게 해주지 못한 일들이 생각나서..
셋째날엔 널 떠나보낼 수가 없어서..
자꾸 눈물이 흘렀다.
중학교 고등학교 대학교까지..
중학교 3학년 바로 옆반 쉬는 시간마다 찰싹 달라붙어..
고등학교 3년 내내 같은반 바로 뒷번호..
같은 대학 같은과..
대체 우리 인연은 어디까지 이어지는거냐고 지겹다는 우스개소리도 했었는데..
결국 중3때부터 14년.. 우리 인생의 절반을 함께했다.
그 인연이 자꾸 나를 울게 만든다 진오야..
그 인연을 왜 좀 더 소중히 여기지 못했을까..
누구보다 가까이에 있어줄 수 있었는데..
누구보다 더 널 안아줄 수 있었는데..
너무 바보같았다 내가..
수능끝나고 난 나대로 노느라 널 까맣게 잊어버리고 있었어..
근데.. 입학하기 2일인가 3일전에 갑자기 전화해서는
나 니네학교 니네과야 라고 말해서..
야 왜 니가 일어과를 와?! 라고 당황했던게 기억난다..
국어과나 영문과라면 이해가 되지만..
평소에 일본쪽엔 큰 관심없던 너라서 참 어이없었는데..
어제 어머니가 그러시더라..
진오가 나비때문에 일문과 갔다고..
너한테 나 따라서 일문과 온거냐는 농담은 했어도..
어머니께 그렇게 들으니까..
눈물이 왈칵 나더라..
괄괄하고 거칠은 내 곁에
너처럼 여리고 순수하고 착한 아이가 있다는 사실이 놀라워,
정말 우리가 친구인건 기적이야 라고 생각했었는데..
남자새끼들만 드글거리는 내 곁에 몇안되는 여자친구.. 그것도 너무나 순수한 천사같은 우리 진오...
체육시간.. 다리 움직이기 싫어서 늘 계단에 앉아서 '진오야!' 라고 널 불렀어.
그럼 쪼르르 왔고 내 옆에 널 앉히고 네 무릎을 베고 누웠어.
원래 나 내방 내침대 아니면 잘 못자서 네 무릎베고서도 잠든적은 한번도 없었어.
그저 혼자 있기 싫었던거지..
그래도 싫다는 소리 안하고 얌전히 무릎을 내주고..
학교끝나고 같이 집에 걸어올때면..
난 군것질이 하고싶어서 알짱거리고..
넌 엄마가 그런거 먹지 말랬다며.. 나 먹는걸 가만히 보고만 있었어.
대체 왜 그렇게 갑갑하게 사냐고 구박 참 많이 했는데..
1학년때는 너 깔끔 떠는게 참 눈에 거슬려서 아주 대판 싸우고 한달인가 서로 말 안한적도 있었잖아..
동전에 손닿는게 싫다고 손톱끝으로 잡는게 그땐 왜 그렇게 싫어보이던지..
작년에 널 봤을때 수술을 두번이나 받았다고 했을때..
아무것도 모르고 있다가 한대 맞은 기분이었다.
어릴때부터 내눈에 비리비리 해보여서 늘 걱정이 되긴 했지만 설마 진짜로 아플줄은 생각 못했거든..
4월말에 뜬금없이 걸려온 네 전화를 보고 시계를 봤어.
9시가 넘은 시간..
그시간에 네 전화를 받은 기억이 없어서 의아했었어.
몸이 더 안좋아지고 정신적으로도 힘들어져서 힘겹다고..
허리도 안좋고.. 걸어다니는것 조차 신기할정도의 체력밖에 안된다고..
힘들다고 문밖으로 나가는것조차 무섭다고 말하던 네게 뭐가 무섭냐고..
불면증 우울증 대인기피.. 나도 다 겪었다고.. 다 지나가는거라고.. 별거 아니라고 말했어..
근데 진오야.. 나 얼마나 힘들고 아픈지 알고 있었어..
나도 겪었던 거 잖아..
혼자서는 버티기 힘들다는거 내가 제일 잘 알고 있는데.. 참으라고.. 견디라고 해버렸어..
왜 그때..
괜찮아 진오야.. 내가 옆에 있어줄께 라는 말을 못했을까..
전화 끊은 다음날 퇴근길에 잠깐 들러 얼굴이라도 봤어야했는데.. 왜 그러지 않았을까..
걸음 내딛는것만으로도 힘겹다고 해서 같이 수영하자고 했었잖아.
둘이 집앞에 수영장 가서 물속에서 레일따라 걷기만하자고..
너 정말 좋아했는데..
수영복 샀다고 어서 6월이 됐으면 좋겠다고..
5월말에 어떤 시간대로 등록할까 라고 문자받았는데..
근데 나 연락을 못했다..
참 웃기지만.. 수영 등록할 6만원이 없었거든..
네가 몸이 안좋아서 수영은 못하고 요가 하자고 해서 시간대 알아보고 연락 해주겠다고 했는데..
연락을 못해줬다..
등록할 6만원이 없어서..
그깟 6만원.. 빌려서 다닐 수도 있었는데..
그깟거.. 얼마 되지도 않는 돈 빌려서 낼 수도 있었는데..
그러질 못했다..
그 말을 네게 하지도 못했다..
착하디 착한 넌 그냥 말없이 나를 기다리기만 했다..
너무 마음이 아픈건..
너와 마지막으로 만난게 무려 8개월전이고..
너와의 마지막 통화가
"지금은 통화하기 좀 그러니까 나중에 전화할께" 였고..
네게 받은 마지막 문자가
"나비통화가안되네..시간되면연락해줘^^*" 였어서.. 그게 너무 가슴에 남아서..
왜 연락을 안했을까..
너무 가슴이 저미도록 미안해서..
너무 아파..
털털한 나와 하나 사이에서 착달라붙어 걷는 네가 사랑한다고 말할때 나는 왜 나도 사랑해라는 말을 해주지 못했을까..
홍대의 공주풍 까페..
맛있는 오코노미야키..
종로의 앤틱홍차집..
왜 널 데려가지 않았을까..
널 보내기가 너무 힘이 든다.
보내고 싶지 않은건지도 모르겠다..
엄마가 좋은데 가서 더 이상 아프지 않을테니 그 생각만하라고 하시는데..
내 욕심은 네가 좀 아파도 이 곳에서 나와 좀 더 시간을 보냈으면 싶다..
내가 너무 이기적인가...?
어디쯤갔니..?
손을 뻗어도 더이상 닿지 않을곳까지 갔니?
거기서 안아프니까 좋니?
넌 하얀빛이 있는 곳으로 갔지?
그래..
너 아니면 누가 거길 가겠니..
우리 천사같은 진오 아니면.. 누가 가니..
사진속의 넌 내가 널 봐왔던 그 언제보다 너무 예뻐서..
미소짓는 네 얼굴이 너무 예뻐서...
그 예쁜 얼굴 다시 볼 수 없다는게 너무 아파서..
네가 한 줌 재가 되어 함에 담길 때 이제 널 안아줄 수가 없어서..
네 이름이 쓰여진 작은 대리석 너머에 네가 있다는게 믿어지지 않아서..
찡오야.. 찡오..
어릴때 찡오라고 불렀었는데..
중학교 3학년때부터 고등학교 3학년때까지 매일 얼굴보고 살았는데..
매일 목소리듣고.. 매일 손을 잡고..
중학교 고등학교 졸업앨범을 다 버리고..
소풍가서 찍은 사진들도 다 버려버리고..
그래서.. 난 네 사진도 없다.
15년이나 함께했는데 사진이 없다..
만나서 핸드폰으로 사진이라도 한장 찍어줬어야했는데..
그런 jpg 파일 한개 조차 없다..
너무 예쁘다 진오...
미안해..
사랑해..
내 소중한.. 친구..
내 소중한.. 인연..
이 말을 이제서야 하게 되서.. 진작 해주지 못해서.. 그래서 미안하지만..
사랑한다 진오야..
그 이름은 우리나라보다 중국 역사 책에서 주요인물로 다루어지고 있고.
너무나 선명하게 '고구려유민 이정기' 라고 되어 있다.
고구려 패망 60년 이상 지난후에야 역사에 등장한 이정기는 당의 절도사였다.
고구려 유민이라는 신분의 핸디캡에도 불구하고 절도사까지 올라가게 된 이정기.
그의 세력은 점점 당의 조정까지 위협하게 되고 겁을 먹은 당은 그에게 점점 높은 관직을 내리고,
급기야 당 최고 관직 재상까지 내리게 된다.
고구려 유민이 관직으로 나갈 수 있는 유일한 길은 군인이 되는 것이었다.
탁월한 능력으로 조금씩 승진을 하던 이정기는 군사들의 신뢰를 얻게 되고,
그를 시기한 절도사는 그에게 누명을 씌워 옥에 가둔다.
그를 구하고자 그를 따르던 군관들이 들고 일어났고 절도사를 끌어내리고 이정기를 절도사로 세운다.
군사들의 신임을 얻은 이정기를 당 조정에서도 손을 댈 수 없었다.
조금씩 세력을 키워나가던 이정기는 주변의 성을 조금씩 함락하고..
마침내 중국대륙과 발해, 신라를 잇는 무역로를 손에 넣는다.
당의 신하로 되어 있기는 하나, 독립적으로 땅을 다스린 그는
세금도 조정에 상납하지 않으며 그 세력을 점점 키워갔다.
당나라의 백성들과 조정은 이정기의 세력이 점점 커져갈수록 불안에 떨었다.
이미 패망해 없어진 나라의 후예가 거대한 중국 땅덩이를 흔들어 놓은것이다.
자랑스러운 우리의 선조다.
이정기는 중국에서 가장 귀하게 여기던 소금을 먼저 손에 넣었다.
귀하디 귀해 소금을 조정에서 관리 판매하기까지했던 당의 입장에서는 곤란하기 이를데 없었다.
하지만 당이 곤란하거나 말거나 그의 세력 하에 있던 백성들은 태평성대를 이루었다.
확립된 법과 세금으로 백성들의 고통을 줄여주었으며, 치안을 확실하게 해서 민심을 동요시키지 않았다.
백성에게는 관대하게 자신의 신하에게는 엄격하게 하여 부정이 일어나지 않도록 했다.
(이건 좀 -_- 저기 어디 있는 그 누군가가 배웠으면 좋겠다...)
세력을 점점 키워나가던 이정기는 당을 함락하고자 십만 대군을 이끌고 제음 벌판으로 향한다.
대외적으로는 '군사훈련'이 이유였으나, 제음벌판은 당 조정에 엎어지면 코닿을 가까운 곳이었고,
당은 당연히 겁을 먹을 수 밖에 없었고, 재상이라는 관직을 내리게 된다.
하지만 참으로 허망하게도 이정기는 그곳에서 지병으로 숨을 거둔다.
그의 나이 고작 50대 였고.. 그의 꿈을 바로 코앞에서 놓쳐버리고 만다...
이정기의 아들은 그의 뒤를 잇게 되고 '제'나라를 선포한다.
하지만 그의 꿈이 깨어졌듯 그의 나라도 깨어지고 만다.
이정기의 손자대에 가자 내란으로 인해 나라가 큰 피해를 입게 되고, 그 틈을 놓치지 않은 당에게 철저하게 멸망한다.
당은 이정기의 망령이 되살아 올것이 두려웠으리라..
피의 강이 흘렀고, 피의 안개가 사흘밤낮동안 가시지 않았다.
고작 3대밖에 가지 못한 제나라..
안타깝기 그지 없으나 지금도 중국의 역사에서의 이정기는 곧고 강성한 기도자였다.
그의 꿈이 이루어져 당이 함락되고 그의 제나라가 중국 대륙을 아우렀다면,,
아마 한민족은 이 한반도에 갇혀 있지는 않았을듯...
안타까우나.. 이것 또한 현실...-_- 하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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